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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동산 칼럼

부동산 폭락과 일본 부동산 버블 우리나라도 똑같을까

폭락론자들은 우리나라와의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며 우리나라도 곧 부동산 폭락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분들의 생각이 모두 틀리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 생각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부동산과 경제 포럼 시리즈로 부동산 폭락과 일본 부동산 버블은 왜 왔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의 부동산 폭락, 버블

#부동산 폭락 #금리인하 #주택담보대출 #부동산 버블 #아파트폭락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의 몰락, 버블"의 시작 플라자 협의(1985) 

플라자합의(1985)

1980년 초중반 미국은 자국 내 인플레이션 현상 해결을 위해 고금리 정책을 단행했고 금리인상으로 달러화가 미국 내로 급격히 회수되며 달러의 가치가 이전보다 50% 이상 평가절상되었습니다. 대외적으로 달러 가치가 높게 책정되어 대외 수출력 저하와 경쟁력이 약화되고 결국 미국은 내수부진과 무역 적자에 늪에 빠지게 되었죠. 

 

하지만 미국의 경제는 미국만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달러의 양적 가치 향상은 세계 무역에 있어 여러 문제점을 나타나게 하였고 결국 세계 G5(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의 재무장관들은 뉴욕에 있는 플라자호텔에서 긴급회동을 갖게 되었습니다. 회의에서 G5는 달러 가치를 약세로 유도하는 시장개입에 합의하고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큰 나라인 독일과 일본이 각각 자국 화폐의 절상을 단행했죠. 


일본 정부의 급격한 금리인하와 투기열풍

 

버블경제시절 일본의 초거대 아파트

일본과 독일의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건 불리한 협의였지만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의 입김 앞에 협의서에 사인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국 내 달러 가치도 유지하면서도 세계 슈퍼파워 지위를 경제적 문화적으로 유지하고 추격을 견제한 셈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일본 자국 내부에서 있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엔고 현상으로 대미 수출경쟁력이 눈에 띄게 악화하며 대외경제까지 악화했습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로서는 금리인하를 급하게 실시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일본 정부는 1986년 1월부터 1987년까지 5 차례 걸친 급격한 금리인하를 강행했고 플라자 합의 이전 5%대에서 2.5%대 금리로 대폭 하락합니다. 그간 40여 년간 불황을 겪어보지 못한 자국민들에게 금리인하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 자금이 향할 곳은 투기밖에 없었습니다. 부동산과 주식 투기로의 자금 이동은 엄청난 버블을 일으켰는데 주택 가격지수는 1990년 버블 붕괴 이전까지 1만 포인트에서 4만 포인트까지 급등했죠. 더 큰 문제는 너도 나도 투기를 하니 은행에서도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경쟁적으로 팔기 시작했고 LTV 120%라는 지금으로서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의 주택담보대출을 해줍니다. 

 


일본 부동산 폭락, 버블의 붕괴 시작

일본경제 호황기 : 세계50대 기업중 33개가 일본기업

 

부동산 거품이든 경제 호황이든 이전에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로 벌어들인 돈으로 전에 없던 호황과 사치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는 화려하고 대도시에는 돈이 넘쳐났습니다. 그야말로 투기 열풍이었죠. 하지만 거품은 1990년을 끝으로 사그라들기 시작합니다.

 

심각성을 알고 먼저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나섭니다. 주택담보대출의 총액을 나머지 총 대출량 미만에 수렴하는 대출 총량규제라는 정책을 폈는데 그 아이디어는 오늘날 DSR이라는 개념과 비슷합니다. 또 금리 인상도 단행했는데 1989년 5월부터 1990년 8월까지 2.5%에서 6.0%까지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 자금을 회수합니다. 금리인상과 대출 총량규제로 부동산 폭등을 막으려 했는데 의도와는 반대로 정부가 시장에 손을 대니 부동산 거품은 순식간에 직격타를 맞았습니다. 

 

1990년 새해 첫날부터 주식이 하락하기 시작하며, 일본 경제 붕괴의 시그널을 알려왔습니다. 상황이 심각함을 느낀 사람들은 이내 부동산과 주식을 처분하고 안전자산을 찾아 자금을 이동하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당시 대다수 일본인들은 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경제는 70년 오일쇼크와 86년 엔고불황까지 포함하여 일본은 1945년부터 90년까지 당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불황기였기에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도 부동산과 주식은 계속 하락하였고 버블은 바닥을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기업과 정부, 가계의 연단 도산, 잃어버린 20년

 

닥을 향해 가고 있던 즈음 살아남기 위해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들은 투자를 줄였습니다. 45년의 경제 대호황을 마치고 결국 역사 이래 최대 불황기로 들어서게 되었죠. 일본 정부의 1년여 만의 급격한 금리인상은 엄청난 도미노 부작용을 가져오는데 현금 없이 대출만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구입했던 가격보다 싸게 부동산을 내놓거나, 경매에 붙여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좋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가격이 싼 매물을 살 사람도 없을뿐더러 시장에는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현금부자들 또한 부족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가 부동산 투기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부로부터 대출규제가 시작되면서 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고 그나마 빌렸다 해도 고금리 상황에서 충분한 매출을 낼 수도 없었습니다. 시장 악화로 가계소비지수가 종전에 20%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물건을 만들어도 사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일본 니케이 지수 주가는 3만 9천 엔에서 2만 3천 엔까지 반토막, 부동산은 최고 1/6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대외적인 악재와 사람들의 욕심, 선례 없는 무리한 금리 강행, 정부의 시장 개입 이 모든 것이 얽혀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와 부동산 폭락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정리해봤습니다. 어떻게 우리나라 현재 부동산 상황과 비슷해 보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약 30년 전인데 금리인하와 정부 규제만으로 설명되던 이젠 부동산 시장과는 다름을 아셔야 합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이외에도 많은 변수와 이해관계가 걸려있으므로 정부의 의도적인 시장개입만으로 부동산 폭락, 경제 폭락에 다다르지는 못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상황과는 어떻게 다른지 다음 편에서는 비교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아래 다른 글 더보기를 확인해주세요.